본 내용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비개별적 정보 제공이며, 투자 권유·자문이 아닙니다.
디지털자산 커스터디 구조
주식을 보유한 법인은 그 주식이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의식하지 않는다. 예탁결제 체계가 소유권을 기록하고, 증권사가 그 기록에 접근하며, 법인은 계좌 잔고를 읽으면 된다. 보관은 제도가 해결한 문제다.
디지털자산은 이 전제가 없다. 자산을 통제하는 것은 계좌가 아니라 키이고, 키를 어디에 어떻게 둘 것인지는 보유자가 직접 선택해야 한다. 잘못 선택하면 자산이 있어도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 혹은 통제는 하지만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증명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디지털자산에서는 "무엇을 살 것인가"보다 "산 것을 어디에 둘 것인가"가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이다.
보관 구조를 보는 두 축
보관 구조는 흔히 거래소 보관, 자기 보관, 수탁 보관의 셋으로 나뉜다. 그러나 이 분류는 한 축만 본 것이다. 누가 키를 쥐는가라는 보관 주체의 축과 별개로, 키가 어떻게 나뉘는가라는 키 구조의 축이 있다. 하나의 키로 자산이 움직이는 단일 서명, 여러 키 중 정해진 수가 모여야 움직이는 다중 서명, 키 자체를 조각내어 어느 조각도 단독으로는 의미가 없게 만드는 분산 서명.
두 축은 독립적이다. 자기 보관이라도 단일 키에 의존하면 한 사람의 실수나 이탈이 곧 자산의 소실이다. 수탁 사업자에게 맡겨도 사업자가 키를 단독으로 통제한다면 상대방 위험은 그대로다. 구조를 이해한다는 것은 이 두 축의 조합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포기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거래소 보관 — 소유권이 청구권으로 바뀐다
거래소 보관의 본질은 편의성이나 해킹 위험이 아니다. 자산을 거래소에 두는 순간, 법인이 가진 것은 자산 자체가 아니라 거래소에 대한 청구권이 된다. 장부에 잔고가 표시되지만, 그 잔고를 실제 자산으로 바꿔주는 것은 거래소의 지급 능력과 의사다.
이 전환이 문제가 되는 순간은 거래소가 지급 불능에 빠졌을 때다. 고객 자산이 거래소의 재산과 분리되어 보관되었는지, 그 분리가 법적으로 인정되는지에 따라 청구권의 가치가 갈린다. 분리 보관 요건이나 잔고 증명 같은 장치가 이 위험을 완화하지만 제거하지는 못한다. 특히 잔고 증명은 거래소가 얼마를 가지고 있는지는 보여주어도 얼마를 갚아야 하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자산의 증명이 지급 능력의 증명은 아니다.
자기 보관 — 통제권의 값은 운영 위험이다
자기 보관은 청구권이 아니라 자산 자체를 쥔다. 상대방 위험이 사라지는 대신, 거래소가 대신 지고 있던 운영 위험이 전부 법인에게 돌아온다. 키의 생성, 저장, 사용, 복구, 폐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실수는 회복 불가능하다. 잘못 보낸 자산은 돌아오지 않고, 잃어버린 키는 다시 발급되지 않는다.
여기서 단일 서명과 다중 서명의 차이가 결정적이다. 단일 키 구조에서는 그 키를 아는 한 사람이 조직 전체의 자산을 단독으로 움직일 수 있고, 그 사람에게 문제가 생기면 조직 전체가 자산에 접근할 수 없다. 특정 인물에 대한 의존이 곧 자산의 위험이 되는 구조다. 다중 서명은 이 의존을 분산시킨다. 정해진 수의 승인이 모여야만 자산이 움직이므로 한 사람의 실수도, 한 사람의 이탈도 자산을 위협하지 못한다.
수탁 보관 — 신뢰를 비용으로 산다
수탁 사업자는 자기 보관의 운영 위험을 전문성으로 흡수하고, 거래소 보관에는 없는 분리 보관과 외부 검증 가능성을 제공한다. 자산이 사업자의 재산과 구분되어 법인 명의로 식별되고, 제3자가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구조다.
대가는 두 가지다. 비용, 그리고 사업자에 대한 신뢰 의존. 수탁 사업자가 키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승인 구조에 법인이 참여하는지, 사업자의 존속이 위협받을 때 자산은 어떻게 되는지가 계약과 기술 양쪽에서 확인되어야 한다. 수탁이라는 이름이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수탁의 구조가 안전을 결정한다.
법인이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개인의 보관은 "내가 키를 안다"로 끝난다. 법인의 보관은 "누가 키를 아는가"에서 시작한다. 이 순간 보관은 기술 문제에서 내부통제 문제로 바뀐다.
첫째, 직무의 분리. 자산 이동을 승인하는 사람, 실행하는 사람, 기록하는 사람이 같아서는 안 된다. 다중 서명은 이 분리를 기술로 강제하는 장치이며,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움직이는 자산이라면 다중 승인은 그 결의의 기술적 구현이다.
둘째, 운영 통제. 승인된 주소로만 출금이 가능한 화이트리스트, 일정 시간이 지나야 실행되는 출금 지연, 한 번에 움직일 수 있는 한도. 이 장치들은 승인 구조가 뚫렸을 때의 피해를 제한한다.
셋째, 복구와 승계. 담당자가 떠나거나 사고를 당했을 때 조직이 자산에 접근할 수 있는 절차가 문서로 존재해야 한다. 복구 절차가 없는 보관은 보관이 아니라 특정 인물에게 자산을 맡긴 것과 같다.
넷째, 검증 가능성. 법인의 자산은 회계에 계상되고 감사를 받는다. 외부감사인에게 "이 주소의 자산을 우리가 통제한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증명은 잔고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통제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온체인 기록은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기록과 법인을 연결하는 것은 보관 구조가 한다. 부동산에서 등기부가 하는 일을 디지털자산에서는 보관 구조가 한다.
구조를 고르는 질문
정답은 없다. 거래가 얼마나 잦은가, 금액이 얼마나 큰가, 승인에 몇 명이 관여해야 하는가, 키를 잃었을 때 복구 절차는 무엇인가, 외부에 통제권을 증명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의 답이 규모와 인력과 목적에 따라 달라지고, 그 답이 구조를 결정한다. 구조를 먼저 고르고 질문을 맞추는 순서는 거꾸로다.
보관 체계가 먼저다
더블록스가 디지털자산을 리서치 단계에 두고 있는 이유가 정확히 여기에 있다. 위의 질문에 문서로 답하기 전에는, 어떤 승인 구조로 어떤 복구 절차를 갖추고 누구에게 통제권을 증명할지가 정해지기 전에는, 편입하지 않는다. 법인이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정비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는 점도 이 순서를 바꾸지 않는다.
투자는 이해가 끝난 다음의 일이다. 디지털자산에서 이해의 첫 장은 가격이 아니라 보관이다.